블록 크기 전쟁: 트럭 운전수 모자를 쓴 노드들이 100조 원 채굴 카르텔을 꺾었을 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비트코인은 1MB 블록 한도를 둘러싸고 사상 최대의 내전을 겪었다. 채굴 독점 기업들과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뉴욕 협약을 맺고 2MB 하드포크를 강제하려 하자, 익명 개발자와 일반 노드 운영자들은 BIP 148 UASF로 맞서 싸워 해시파워가 아닌 사용자가 비트코인의 진정한 주인임을 증명했다.

3줄 퀵 브리핑
- 발단 / 역설2010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스팸 공격 방지를 위해 임시 도입했던 1MB 블록 한도는 2015년 트랜잭션 폭증으로 가스비 대란을 일으키며 생태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 결정적 사건해시파워 83%를 장악한 채굴 풀과 58개 거대 기업이 2017년 5월 뉴욕 협약(SegWit2x)을 맺고 코어 개발진의 동의 없이 일방적 하드포크를 강행하려 했다.
- 역사적 결말일반 노드 운영자들은 초록색 UASF 모자를 쓰고 BIP 148 소프트웨어를 실행해 채굴자들을 굴복시켰으며, 2017년 8월 1일 비트코인 캐시 분열을 거쳐 노드 주권의 원칙을 영구히 확립했다.
사건의 흐름 한눈에 보기
사토시 나카모토가 초기 네트워크를 분산 서비스 거부(DoS) 스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MB 제한 코드를 조용히 추가했다.
마이크 헌과 개빈 안드레센이 블록 크기를 8MB로 늘리는 비트코인 XT를 발표하며 거버넌스 분쟁에 불을 지폈다.
전 세계 해시레이트의 83%를 대표하는 채굴 풀과 58개 기업 대표들이 뉴욕 컨센서스 행사에서 SegWit2x 협정을 체결했다.
사용자 활성화 소프트포크(UASF)가 발효되자 빅블록 진영은 비트코인 캐시(BCH)로 분리 독립했고 비트코인은 세그윗을 활성화했다.
전 세계 노드 유저들의 거센 반발과 파멸적인 체인 분열 위험에 직면한 기업 주최 측이 2MB 하드포크 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1MB 천장과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금융 철학
2010년 7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코드에 블록 크기를 1MB로 제한하는 규칙을 추가했다. 당시 블록 용량은 수 킬로바이트에 불과해 초기 참여자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사토시는 거대 스팸 트랜잭션이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는 디도스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벽으로 한도를 설정했다. 이후 5년간 이 보이지 않는 벽은 네트워크의 안정을 묵묵히 지켰다.[3]
그러나 2015년 거래량이 폭증하자 블록 크기가 1MB 한도에 지속적으로 도달했다. 멤풀에 미확인 거래가 수만 건씩 밀리고 수수료가 폭등했다. 기술적 한계로 시작된 문제는 곧 비트코인의 존재 이유를 묻는 철학적 내전으로 번졌다. 커뮤니티는 일상 결제 화폐를 지향하는 진영과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을 우선하는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졌다.[3]
개발자 개빈 안드레센과 투자자 로저 버가 이끈 빅블록 진영은 비트코인이 전 세계 누구나 쓰는 전자 화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피 한 잔을 살 때 수수료가 비싸다면 사토시의 비전은 실패하며, 블록 크기를 즉시 늘려야 대량 결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3]
블록이 커지면 풀 노드 운영 비용이 더 비싸진다. 따라서 풀 노드를 운영하는 해셔가 줄고 중앙화된 주체의 힘이 커지며, 비트코인은 더 많은 신뢰를 요구하게 되어 가치 제안이 약해진다.[3]— Bitcoin Wiki
스몰블록 요새와 세그윗(SegWit)의 수학적 돌파구
반면 비트코인 코어 개발진은 다른 가치를 수호했다. 그레고리 맥스웰과 피터 윌레 등 스몰블록 진영은 비트코인의 핵심이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탈중앙성에 있다고 보았다. 블록 크기가 수십 메가바이트로 커지면 저장과 대역폭 비용이 폭증해 일반인이 집에서 풀 노드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이었다.[1][3]
노드 검증이 기업형 데이터 센터에 집중되면 정부의 규제와 검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코어 진영은 베이스 레이어를 작고 가볍게 유지해 누구나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대규모 결제 확장은 라이트닝 네트워크 같은 오프체인 2계층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1][3]
2015년 12월, 피터 윌레가 혁신적 해법인 격리증인(SegWit / BIP 141)을 발표했다. 서명 데이터를 분리하고 가중치를 할인 적용해 거래 가변성 결함을 해결하면서 실질 용량을 2~4MB로 늘리는 기술이었다. 특히 구형 노드와도 호환되는 하위 호환 소프트포크 방식이었다.[1]
하지만 세그윗은 거대한 장벽에 부딪혔다. 소프트포크 활성화에 필요한 채굴자 95% 신호 규칙 때문이었다. 비트메인의 우지한과 중국 채굴 풀들은 자사 독점 효율 기술인 아식부스트가 무력화될 것을 우려해 지지를 거부하고 온체인 하드포크를 요구했다.[1][3]
뉴욕 협약의 밀실 야합과 트럭 운전수 모자 민병대
2017년 5월, 맨해튼 컨센서스 행사에서 위기가 폭발했다. 디지털 커런시 그룹의 배리 실버트는 전 세계 해시레이트 83%를 대표하는 58개 거래소와 채굴 풀을 호텔 밀실로 모았다. 이들은 세그윗을 즉시 도입하는 대신 6개월 뒤 블록 크기를 2MB로 올리는 뉴욕 협약(SegWit2x)에 서명했다.[3]
기업들은 실용적 비즈니스 협상으로 분열을 해결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착각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오픈소스 코어 개발자와 일반 노드 운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소수 기업과 채굴 카르텔이 모여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비트코인의 기본 원칙을 침해한 것이었다.[3][4]
반격은 인터넷 밑바닥에서 일어났다. 익명 개발자 Shaolinfry가 제안한 사용자 활성화 소프트포크(UASF / BIP 148)가 들불처럼 번졌다. 2017년 8월 1일부터 세그윗을 지지하지 않는 채굴 블록을 노드들이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수천 명의 유저들이 초록색 UASF 모자를 쓰고 BIP 148 노드를 가동했다.[2][4]
이 BIP가 활성화된 동안 모든 블록은 nVersion 헤더의 상위 3비트를 001로, 비트 필드를 (1<<1)로 설정해야 한다. 필요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블록은 거부된다.[2]— BIP 148
8월 1일의 결별, SegWit2x의 패퇴와 영구한 노드 주권
BIP 148의 게임이론적 압박은 강력했다. 거래소와 경제 노드들이 비표준 블록을 거부하겠다고 나서자 채굴자들은 수십억 원의 전기료만 날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채굴 풀들은 마감 시한 전 BIP 91로 세그윗을 승인했다. 통제권을 잃은 빅블록 강경파는 2017년 8월 1일 8MB 블록의 비트코인 캐시(BCH)로 분리 독립했다.[4][5]
세그윗 안착 후에도 뉴욕 협약 기업들은 11월 2MB 하드포크를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풀뿌리 커뮤니티는 NO2X 서약 운동을 펼치며 기업 주도 포크를 적대적 알트코인으로 규정했다. 검증 노드를 쥔 사용자들이 거부하는 한 어떤 거대 자본도 코드를 바꿀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3][4]
포크 예정일 직전인 2017년 11월 8일, 마이크 벨시 등 기업 주최 측은 무조건적인 항복 성명을 냈다. 커뮤니티 합의 없는 하드포크는 파멸을 부를 뿐이라며 SegWit2x를 공식 취소한 것이다. 무명의 개인 노드 운영자들이 거대 채굴장과 벤처 자본 연합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3]
블록 크기 전쟁의 유산은 영구적이다. 해시파워는 진리를 정하지 못하며, 자본도 분산된 합의를 꺾지 못한다는 헌법이 세워졌다. 비트코인의 주권은 채굴 시설이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블록을 검증하는 개인들의 풀 노드에 있음을 역사에 증명한 사건이었다.[3][4][5]
이 사건이 남긴 핵심 교훈 (Key Takeaways)
하위 호환 소프트포크는 네트워크 분열 없는 합의 업그레이드를 보장한다
세그윗은 하드포크 없이도 서명 데이터를 분리하여 유효 용량을 확장하고 주요 버그를 해결함으로써, 구형 노드의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고 생태계를 통합하는 소프트포크의 기술적 우수성을 입증했다.
채굴 해시파워는 시장과 경제적 노드의 수요에 종속된다
채굴자는 거래 순서를 정하는 하청 작업자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지닌 거래소와 노드들이 거부하는 블록을 채굴할 경우 막대한 전기료 손실과 파산에 직면하게 됨을 보여주었다.
풀 노드의 광범위한 분산만이 거대 카르텔로부터 시스템을 지키는 방패다
일반인이 가정용 컴퓨터로 실행할 수 있는 낮은 검증 비용이야말로 비트코인이 기업과 채굴자의 과두제 야합에 굴복하지 않고 개별 사용자들의 주권적 거부권을 지켜내는 궁극의 원천이다.
이 인물 & 사건과 연결된 또 다른 이야기
역사의 나비효과로 이어진 블록체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계속해서 탐험해 보세요.
공중 엔진 교체: 이더리움은 어떻게 더 머지(The Merge)를 완수하고 전 세계 전력의 0.2%를 절감했는가
비행 중인 보잉 747 엔진 교체, 수조 원대 채굴 카르텔의 반란 진압, 그리고 전 세계 전력의 0.2%를 절감한 이더리움 '더 머지'의 충격적 실화.
스토리 읽기 →
닉 자보(Nick Szabo): 스마트 컨트랙트와 비트 골드의 창시자, 그리고 사토시 나카모토의 영원한 수수께끼
1994년 스마트 컨트랙트 명명부터 1998년 비트 골드 설계까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사상적 청사진을 구축한 암호학 거인의 역사.
스토리 읽기 →
서니 킹(Sunny King): 지분증명(PoS)의 최초 발명과 사라진 암호학 거장의 전설
2012년 피어코인과 코인 에이지의 발명, 순수 과학을 위한 프라임코인, 그리고 이더리움 지분증명 전환의 사상적 모태가 된 서니 킹의 일대기.
스토리 읽기 →출처 및 참고 자료
- [1]출처 1: BIP 141: Segregated Witness (Consensus Layer) SpecificationBitcoin BIPs Repository · 2015-12-21확인 2026-09-03
- [2]출처 2: BIP 148: Mandatory Activation of SegWit Deployment (UASF)Bitcoin BIPs Repository · 2017-03-12확인 2026-09-03
- [3]출처 3: Block Size Limit Controversy ArchiveBitcoin Wiki · 2017-11-20확인 2026-09-03
- [4]출처 4: BIP 0148 User Activated Soft Fork Historical DocumentationBitcoin Wiki · 2017-08-10확인 2026-09-03
- [5]출처 5: Bitcoin Cash Hard Fork and Genesis Ledger HistoryWikipedia · 2017-08-01확인 2026-09-03